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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숲으로 가요, 사려니숲길

행 도중 만나는 비는 어쩐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날씨가 좋지 않다며 여행 일정을 다 망쳤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모든 것을 환히 밝히는 햇볕도 좋지만, 때론 운치 있는 먹색 하늘도 좋다. 여기,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어쩌면 비가 올 때 가는 게 더 좋은 곳이 있다. 제주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한 사려니숲길이다. 빗소리를 따라 한적한 숲속을 걷고 싶다면 아름다운 사려니숲길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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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를 따라 걷기

사려니숲길 입구에 도착하면 하늘 높이 뻗은 나무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언제 가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걷기에 좋은 숲길이다. 입구에서 나무들 곁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빗소리와 함께 흙 내음과 풀 냄새가 어서 오라는 듯, 잘 왔다는 듯 말을 건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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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숲, 사려니

사려니숲길의 사려니는 살안이혹은 솔안이라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 ‘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의 신명에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신성한 분위기가 감도는 숲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삼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 이름처럼 신성한 곳임을 느낄 수 있다.

삼나무 숲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숲이다. 80년이 넘은 삼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같은 나이지만 어떤 곳은 듬성듬성 있고 어떤 곳은 아주 밀도 높게 심겨 있는데, 솎아베기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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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가 큰 삼나무

사려니숲길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에서 물찻오름을 거쳐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로까지 약 15km로 이어진 숲길을 말하며 해발 500~600m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에 속한다. 생각보다 긴 숲길은 입구를 잘못 들기에 십상이기 때문에 필자가 소개한 숲길을 걷기 위해선 붉은 오름 입구부터 걷는 것이 좋다. 곧바로 삼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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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처럼 높게

고개를 올려다봐야 맞닿아있는 나무를 볼 수 있다. 키가 큰 삼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안개가 뭉근히 피어난 모습이다. 키가 큰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곳에 와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나무가 밀집해 숲을 이루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마냥 걷고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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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이만큼

우산을 두드리는 빗물이나 흙 밟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이만큼 와있다. 사려니숲길에선 다양한 식물군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온대 산림인 사려니숲길에는 자연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죽나무, 단풍나무 등 천연림과 인공조림된 삼나무, 편팩나무 등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신성한 생명의 공간이자 자연 생태문화를 체험하는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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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숲속에서 나 혼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다가도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이 숲속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느끼고 싶어 숲에 찾아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다. 때론 숲은 누군가와 하는 대화보다도 더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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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게 피어난 파란 산수국

말간 얼굴을 보여주는 산수국과 인사한 뒤 다시 돌아간다. 비가 와서 더 걷기 좋았던 날이다. 발소리와 빗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고 숲이 건네는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친절하고 신성한 숲, 그리고 아름다운 사려니숲길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을 터놓을 사람 없을 때 천천히 삼나무 숲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아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올 것이다.


 INFO. 사려니숲길 

  •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 관람시간: 매일 09:00 - 17:00
  • 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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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차 담차

매일 무언가를 쓰는 사람 담차입니다. 책, 차, 고양이와 여행을 좋아합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한 뒤 <겨우 한 달일 뿐이지만>을 펴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쓰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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